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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을 3일이나 건너뛰었더니 거실이 똥과 오줌으로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문을 열자마자 냄새부터 훅 올라오는데, 순간 머리가 하얗게 아득해지더라고요. 바닥을 여기저기 치우면서도 화가 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훨씬 더 컸습니다.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산책을 제때 못 나갔더니, 까망이는 그걸 말 대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까망이의 무언의 반항, 산책 3일 건너뛴 결과

    사실 일주일 전부터 조짐이 있긴 했습니다. 산책을 띄엄띄엄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까망이가 조금 달라졌거든요. 예전 같으면 목줄만 봐도 문 앞에서 팔짝팔짝 뛰던 아이가, 요즘은 목줄을 봐도 시큰둥하게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처음엔 어디 몸이 안 좋은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까망이 나름대로의 무언의 반항이었습니다. 나가는 횟수가 줄어드니까 나름대로 서운함을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결국 거실 사고가 터졌습니다. 치우면서 한마디 하려고 하는데, 까망이가 눈을 아예 깔고 저를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평소 같으면 눈치를 보며 슬쩍이라도 쳐다볼 텐데, 그날은 정말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목소리 톤을 낮추고 부드럽게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제야 슬쩍 눈을 맞춰주었습니다. 화난 목소리에는 철저히 외면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만 반응하는 걸 보면서 '얘도 정말 다 감정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11년 함께한 까망이가 주인의 손길을 받으며 다정하게 바라보는 따뜻한 일상의 모습. 턱밑의 하얀 털이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합니다.

    "얘 지금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까딱

    치우는 내내 까망이는 옆에서 계속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표정이 딱 "얘 지금 혼자 뭐라는 거야?" 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그 와중에 고개를 요리조리 까딱까딱 움직이는데, 제 말을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건지 진짜 알아듣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정말 그 고개를 요리조리 까딱거릴 땐 귀여워서 아주 환장할 지경이더라고요.

    사람이었으면 등짝이라도 한 대 찰싹 때렸을 텐데, 그 표정을 보고 있으니 차마 나무랄 수가 없었습니다. 억울한 듯 안쓰러운 눈빛에 귀여움까지 섞여 있으니, 부글부글 올라오던 화도 스르르 풀려버렸습니다.

    바닥을 치우다 말고 그 표정을 한 번 보고, 한숨 한 번 쉬고 또 치우고, 그러다 또 까망이 눈치를 보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녀석이 어느새 내 하루의 중심에 깊게 들어와 있구나 하고요. 화를 내려해도 안 되고, 서운함도 아이 표정 하나에 다 녹아버리는 걸 보면, 까망이가 제 삶 안으로 정말 깊숙이 스며들었나 봅니다.

    11년이라는 시간, 턱밑에 가장 많이 남은 흰 털

    까망이랑 함께한 지도 벌써 11년째가 되었습니다. 사람 나이로 치면 이제 저보다 어르신인 셈이지요. 처음 데려왔을 때는 눈이 초롱초롱하고 까맣게 반짝여서 이름도 '까망이'라고 지어주었는데, 지금은 그 눈망울 밑으로 흰 털이 하나둘 올라와 있습니다. 특히 턱밑에 흰 털이 제일 많이 나고 있더라구요.

    요즘은 턱밑에 하얗게 번진 털을 볼 때마다 '이러다 우리 까망이, 진짜 실버 푸들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실 처음 까망이를 만났을 때만 해도, 저는 실버 푸들이 까만 아이와 하얀 아이 사이에서 태어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옛날에 이 말을 했다가 주위 사람들한테 엄청 놀림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으며 하나둘 하얗게 변해가는 까망이 턱을 보고 있으니, '아, 이렇게 시간을 듬뿍 머금고 실버 푸들이 되어가는 거였나' 싶어 혼자 피식 웃게 됩니다. 세수하다가 문득 까망이 턱을 만질 때마다 그 하얀 털을 보고 있으면 귀엽기도 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괜히 짠해집니다.

    그래도 신기한 건, 아무리 힘든 하루였어도 까망이 응가를 치우며 그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는 점입니다. 말도 못 하고 화도 내지 못하는 그 표정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제가 위로받는 느낌이 듭니다.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아이도 늙어가고 저도 함께 늙어가는데, 그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럴 때 확 와닿곤 합니다.

    퇴근 후 꼬리콥터, 제 손에 입을 갖다 대는 까망이

    그래도 하루 중 제일 좋은 순간은 퇴근하고 문을 여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들어오는데, 까망이가 꼬리콥터를 돌리며 반겨주면 그 피로가 순식간에 반쯤은 날아가 버립니다. 안아달라고 할 때는 꼭 입을 제 손에 갖다 대는 버릇이 있는데, 그 작은 행동 하나가 하루 동안 쌓인 고단함을 다 풀어줍니다.

    거실에 사고를 친 그날도 결국 마무리는 똑같았습니다. 깨끗이 씻기고 치우고 나서 소파에 앉으니, 까망이가 옆에 딱 붙어서 꼬리콥터를 돌리며 입을 제 손에 가져다 대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냥 웃음이 나왔습니다. 화낼 힘도, 화낼 이유도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까망이가 정말 제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는 아무리 바쁘고 늦더라도 산책만큼은 절대 거르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산책을 다녀오면 꼭 저렇게 소파에 나란히 앉아, 턱밑의 하얀 털을 따뜻하게 한 번씩 쓸어주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