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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구, 덥다." 시원한 바람 밑에서도 나오는 그 말 한마디.

    "아이고 죽겠다." 힘들 때마다 무심코 내뱉는 말입니다. 일이 많아도 하고, 몸이 조금 피곤해도 하고, 별일 아닌데도 입버릇처럼 나올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일도 있습니다. 에어컨 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앉아 있으면서도 저는 습관처럼 "에구, 덥다"라는 말을 내뱉습니다. 리모컨으로 온도를 18도까지 내려놓고,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입에서는 "덥다"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몸은 이미 서늘한데, 입은 여전히 한낮의 뙤약볕을 말하고 있는 셈이죠.

    처음엔 그냥 웃긴 습관인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 그냥 말로 끝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요.

     

    몸보다 말이 먼저 반응할 때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게 에어컨 앞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나서도 소파에 앉으면 어느새 "아, 출출한데 뭐 먹을 거 없나"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배는 부른데 입이 심심하니 뭔가를 씹고 싶은 걸, 저는 늘 "출출하다"고 자동으로 반복하는 겁니다. 할 일을 다 끝내놓고 침대에 누웠으면서도 "아직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라며 찜찜해하고, 결국 다시 휴대폰을 켜서 별로 급하지도 않은 메일함을 확인합니다.

    딱히 아픈 것도 아닌데 소파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만 해도 "아이고 삭신이야"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몸을 살펴보면 별로 아픈 데도 없는데, 앉았다 일어나는 그 동작 하나에 말이 먼저 반응해 버리는 겁니다. 주말에 늦잠까지 자놓고도 눈뜨자마자 "피곤하다"는 말부터 합니다. 상황은 이미 바뀌었는데, 말은 늘 예전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느낌입니다.

    말은 그냥 소리가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시원한 바람 아래서도 "덥다"고 말하면 정말 조금 더 덥게 느껴지고, 배부른 채로 "출출하다"고 말하면 괜히 냉장고 문을 한 번 더 열어보게 됩니다. 몸의 신호보다 말의 습관이 앞서서 나를 끌고 가는 셈입니다.

     

    말버릇 하나가 하루의 색깔을 정한다

    더 무서운 건 이런 말들이 그날 하루의 기분까지 은근히 물들인다는 겁니다.

    에어컨 밑에서 "덥다"고 툴툴대며 하루를 시작하면, 이상하게 그날은 계속 뭔가 짜증 나고 힘든 일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어느 날은 같은 상황에서 "아, 시원하다"라고 한마디 바꿔 말해본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 순간 기분이 훨씬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상황은 똑같았는데 제가 고른 말 한마디로 그날의 온도가 달라진 셈입니다.

    "나는 생겨 먹은 게 원래 이래", "에구 귀찮아 죽겠다", "조금 있다 하지 뭐" 같은 말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 순간의 기분을 표현한 말이었을 텐데,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그 말이 내 생각이 되고, 생각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됩니다. 저도 모르게 "덥다"는 말을 반사적으로 내뱉듯,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에게 어떤 암시를 걸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실내에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일상을 바꾼다 는 글의 분위기를 담은 편안하고 따뜻한 이미지입니다.

    말 한마디 바꿔보는 작은 실험

    그래서 요즘은 에어컨 밑에서 "덥다"는 말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잠깐 멈칫하게 됩니다. 정말 더운 건지, 아니면 그냥 입에 붙어서 나오는 말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거죠.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렇게 한 번씩 멈춰서 내가 하는 말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다른 느낌이 듭니다.

    거창하게 "오늘부터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결심하는 대신, 딱 이 정도만 해보고 있습니다. 에어컨 밑에서는 "시원해서 좋다"고 한 번 바꿔 말해보기. 밥 다 먹고 나서 출출하다는 말이 나오려 하면 "배부르네, 잘 먹었다"로 바꿔보기. 잠들기 전에 습관처럼 휴대폰을 켜고 영상을 보려던 손을 잠깐 멈추고, 10분만 그냥 눈을 감아보기.

    아주 작은 변화지만 반복되면 새로운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습관은 결국 새로운 하루를 만들어냅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인생을 크게 바꾸는 것은 특별한 사건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원한 바람 아래서도 "덥다"고 말해버리는 사소한 순간, 배부른데도 "출출하다"고 중얼거리는 별것 아닌 말버릇,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나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정말 더운 걸까, 아니면 그냥 늘 하던 말을 내뱉고 있는 걸까.'

    습관은 편해서 무섭고, 익숙해서 더 무섭습니다. 내가 그것을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나를 선택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오늘은 에어컨 밑에서 "덥다"는 말 대신 "시원해서 좋다"고 한번 말해봐야겠습니다. 말 한마디가 다르면, 오늘 하루도 조금은 다르게 흘러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