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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지팔 흔들고 난 내 팔 흔들고. 30년 넘는 제 결혼 생활이 딱 이랬습니다.
부부 대화, 신혼 초기부터 우리 둘 이야기만 쏙 빠져 있었다
돌아보면 저희는 신혼 초부터 '우리 둘'의 깊은 속마음을 주제로 이야기해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서로 어떤 점이 힘들고 고마운지" 같은 따뜻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습니다.
식탁에 앉아 나누는 말이라고는 늘 시댁이나 친정 이야기, 혹은 건너 건너 들은 남의 집 소식 같은 제삼자의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정작 서로의 마음을 보살펴야 할 '우리 둘만의 이야기'는 쏙 빠져 있었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그나마 나누던 말조차 "밥 먹었어?", "응", "오늘 늦어?", "어" 같은 단답형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공통의 관심사나 대화 주제가 없으니 나중에는 먼저 말을 걸려고 해도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그 어색한 정적이 너무나 숨 막혔습니다. 예전 어른들은 '결혼 초에 아내를 확실히 잡아 길들여야 편하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남편 역시 나에게 주도권을 잡고 싶었던 것인지 둘 사이에 높은 벽을 치고 도통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기싸움을 해서 얻을 것이 무엇이라고 그리 벽을 쳤는지, 순 남자들 위주의 고집스러운 생각이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저 역시 마음의 문을 닫았고, 남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싫어져 버렸습니다.
따로국밥 30년, 지는 지팔 흔들고 난 내 팔 흔들고
우리 부부는 지난 30년 동안 한 지붕 아래 살았지만, 완벽한 '따로국밥'이었습니다. 같이 살고는 있었지만 삶의 궤적은 단 한 한 번도 겹쳐본 적이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지는 지팔 흔들고 난 내 팔 흔들며' 각자의 길을 마이웨이로 살아온 셈입니다. 같은 길을 걸어가도 서로 손을 잡기는커녕 각자 제 팔만 흔들며 따로 걸어가는 모습,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상대방과 마음을 터놓는 대화가 전혀 없다 보니 남편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나라는 사람을 한 인간으로서 이해는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가끔 남편이 별것도 아닌 일에 버럭 화를 내거나 삐쳐서 며칠씩 꽁해 있을 때가 있었는데, 도통 어느 포인트에서 기분이 상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습니다.
"왜 그래?" 하고 물어봐도 입을 다물고 제대로 답을 주지 않으니 혼자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었고, 그 혼자만의 짐작은 거의 대부분 틀리곤 했습니다. 30년 넘게 한 이불을 덮고 자고 같은 밥을 먹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그 누구보다 낯선 이방인이었습니다.

딸과의 대화에서 찾아온 깨달음,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당부
제가 우리 부부 관계가 완벽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딸아이가 자라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딸과 친구처럼 오순도순 앉아 소소한 일상부터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딸과 수다를 떨며 마음을 주고받는 그 소소한 기쁨을 누리다 보니, 그제야 내 결혼 생활에 무엇이 빠져 있었는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아, 원래 부부란 이렇게 사소한 것도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며 사는 거구나', '우리 부부에게는 이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대화가 아예 없었구나'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솔직히 내 마음도 나 스스로가 잘 몰라 헷갈릴 때가 많은데, 말 한마디 안 해주는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혼자 다 알아채겠습니까? 아무리 눈치가 빨라도 혼자 지레짐작해 봤자 그 답은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혼자 속으로 판단하지 말고, 먼저 물어보고 얘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진짜 마음을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버린 제 결혼 생활은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대화 없이 너무 견고한 담을 쌓아버렸기에 이제 와서 허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이미 저의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어엿한 새내기 가정을 꾸리려는 이 세상의 모든 딸과 아들들, 그리고 젊은 신혼부부들은 부디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써봅니다.
얼마 전 예비 사위를 만났을 때, 사위가 수줍게 웃으며 저한테 인생의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더군요. 저는 망설임 없이 딱 한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살아라. 말을 하고 들어봐야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제 말을 들은 사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어머니, 딸아이가 왜 저한테 사소한 것까지 자꾸 물어보고 확인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하고 웃더군요. 저는 딸아이에게도 사소한 일로 절대 혼자 지레짐작해서 오해하지 말고, 먼저 물어보고 대화하라고 몇 번이고 일러두었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마음을 이어주는 가장 유일하고 확실한 다리는 바로 '대화'입니다. 물어보고 들어봐야만 비로소 상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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