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암 환자들에게 오랫동안 항 호르몬 요법은 필수적인 치료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 2025년 샌안토니오 유방암 국제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신약 지레데스트란트가 새로운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과 항 호르몬 요법의 현실
호르몬 양성 유방암은 여성 호르몬, 특히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유방암입니다. 에스트로겐이 유방암세포에 있는 호르몬 수용체를 자극하면 마치 스위치를 켜는 것처럼 암세포의 증식과 분열이 활성화되고, 결국 전이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치료가 항 호르몬 요법입니다.
현재 항 호르몬 요법의 대표적인 약재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로, 대표적인 상품명이 놀바덱스인 타목시펜입니다. 이 약은 호르몬 수용체의 스위치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두 번째는 아로마타제 억제제로, 폐경 이후 여성에게 주로 처방되며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소량의 에스트로겐 생성 자체를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페마라가 대표적인 아로마타제 억제제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항 호르몬 요법이 5년에서 길게는 10년에 걸쳐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복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지광 원장은 영상에서 "10년 동안 꾸준히 약을 먹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단순히 알약 하나를 삼키는 행위가 아닙니다. 매일 아침 혹은 저녁, 약통을 여는 그 순간마다 자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는 반복적인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약 15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유방암 관련 정보도 많지 않았고 환자 커뮤니티도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진단 자체가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것처럼 느껴질 만큼 정보의 공백이 컸던 시절이었습니다.
수술만으로 치료가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항암치료를 6차에 걸쳐 총 12회 받았고, 이후 방사선 치료도 33회 진행했습니다. 치료가 길어질수록 체력적인 부담도 컸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마음의 부담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암이라는 진단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컸습니다. 지금처럼 다양한 정보나 환자 경험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후 타목시펜을 5년 동안 복용했습니다. 매일 약을 챙겨 먹는 일은 단순한 복약이 아니라 치료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계속 상기시키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긴 치료 기간을 견뎌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는 환자들은 동일한 감정적 충격을 경험합니다. 정보는 늘었지만,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제의 발전은 단순히 생존율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더 적은 부작용, 더 간편한 복용 방식은 환자들이 10년이라는 긴 치료 기간을 정서적으로도 감당해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ESR1 돌연변이와 항 호르몬 요법 저항성 문제
항 호르몬 요법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ESR1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항 호르몬 요법 저항성입니다.
타목시펜이나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꾸준히 복용함에도 불구하고 약이 점점 듣지 않게 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ESR1이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ESR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에스트로겐과 무관하게 호르몬 수용체 스위치가 항상 켜져 있는 상태가 됩니다. 쉽게 말해 약의 내성이 생긴 것과 동일한 결과입니다. 기존 약재를 아무리 복용해도 암세포는 계속 분열하고 증식할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저항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에도 서드(SERD), 즉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가 개발된 바 있습니다. 타목시펜이나 아로마타제 억제제가 스위치를 차단하거나 스위치에 접근하는 키를 막는 방식이라면, 서드는 스위치 자체를 분해시켜 버립니다. 대표적인 약재가 풀베스트란트로, 근육 주사 방식으로 투여됩니다.
그러나 풀베스트란트는 근육 주사제이다 보니 환자가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생체 이용률도 다소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 현재는 1차 치료제가 아닌 2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오늘 소개할 신약 지레데스트란트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지레데스트란트는 경구용 서드, 즉 오랄 서드(Oral SERD)입니다. 병원을 방문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먹는 약 형태로, 기존 풀베스트란트가 가진 한계를 극복한 약재입니다. ESR1 돌연변이로 인해 항상 활성화되어 있는 수용체 스위치까지 분해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호르몬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계열의 오랄 서드로는 카니제스트란트 등 다른 약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영상에서 정지광 원장이 지레데스트란트를 특별히 집중적으로 다룬 이유는 리데라(LIDRA) 스터디라는 3상 연구 결과에 있습니다. 이 연구는 1기부터 3기까지의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포함시켰으며, 이는 초기 유방암 환자들도 이 약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기존 약재들이 어느 정도 진행된 환자를 주요 대상으로 했다면, 지레데스트란트는 초기 단계부터 활용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강점을 가집니다.
재발률 감소와 신약의 희망적 가능성
지레데스트란트가 현재 가장 주목받는 핵심적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기존 약재에 비해 재발률을 약 30% 더 낮출 수 있다는 임상 결과 때문입니다. 아직 명확한 최종 결과가 도출된 것은 아니지만, 생존율에서도 약 3% 가까운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수치만 보면 3%가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방암 치료의 역사에서 생존율 3%의 개선은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닙니다. 매년 수많은 유방암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3%는 환자 개개인의 예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수치로 평가됩니다.
부작용 측면에서도 지레데스트란트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존 약재 복용 시 이상 반응이 약 8%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지레데스트란트에서는 약 5%로 낮아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일부 환자에게서 경미한 이상 반응이 보고되기도 했지만 , 심각한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 아닌 경과 관찰만으로 충분한 가벼운 증상으로 대부분 마무리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환자들이 고통스러워했던 근골격계 통증도 기존 약재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중으로 나타났으며, 폐경기 증상과 같은 합병증들도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향후 전망도 밝습니다. 버제니오, 키스칼리 같은 CDK4/6 억제제와의 병용 투여 연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며, 병용 투여 시 더욱 향상된 치료 성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초기 유방암부터 중등도, 진행된 유방암까지 광범위한 환자군에서 효과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던 중간 단계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한계도 직시해야 합니다. 현재 지레데스트란트는 유럽 승인도, 미국 FDA 승인도 받지 않은 상태입니다. 국내 적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설령 도입된다 하더라도 건강보험 급여 기준에 맞지 않으면 고가의 비급여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 있습니다. 키스칼리나 버제니오처럼 좋은 약이 있어도 경제적 여건에 따라 치료 접근성이 달라지는 현실은, 앞으로 이 신약이 넘어야 할 사회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정지광 원장이 영상 말미에 "신약이 나온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고, 나에게 맞는 치료가 가장 좋다"라고 강조한 것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온 지금 돌아보면,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맞는 치료 방향을 담당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15년 전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그리고 5년간의 타목시펜 복용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소식이 환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레데스트란트의 등장은 단순한 신약 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재발률 감소와 부작용 완화라는 구체적인 성과가 담긴 이 희망의 소식이 치료의 긴 여정을 걷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닥터 정지광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YioUq2_lD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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