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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바람이 서글픈 이유, 그 아이가 이제 결혼하겠다고 한다

write64521 2026. 8. 7. 10:58

사지 다 묶어놓고 억지로 약을 먹이는 것처럼, 아이의 다리를 내 다리 사이에 꼭 끼워 넣은 채 입을 벌려 약을 짜 넣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기억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약 한 모금 제대로 먹이는 일조차 엄마다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매일같이 치러야 하는 거대한 전쟁과도 같았습니다. 눈물과 떼쓰기, 그리고 미안함이 뒤섞인 그 작은 방 안은 날마다 피 말리는 전투 현장이었습니다.

처서의 서늘한 바람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를 키우던 지난날을 떠올리는 엄마의 회상과 세월의 흐름을 따뜻하게 담은 감성 일러스트.

 

1년 내내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던 두 살, 세 살의 나날들

장이 서는 거리처럼 늘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 속에서, 아이를 애기 때부터 키우며 직장 생활을 이어가야 했던 터라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품에 두고 보듬어주고 싶었지만, 현실의 무게는 아이를 일찍 세상 밖으로 내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살, 세 살 무렵의 아이는 1년 12달 내내 감기를 달고 살며 기침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큰 병이라도 걸린 것은 아닐까 놀란 마음에 몇 번이고 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아봐도, 의사는 특별히 큰 이상은 없고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쿨럭거리며 가슴을 뒤흔드는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바라보는 엄마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안 먹으려는 아이를 억지로 잡고 약을 먹이다 보면 아이는 사래가 걸려 겨우 먹인 약을 전부 토해내기 일쑤였습니다. 양손과 양다리를 잡고 거의 옛날 사극에 나오는 결사항전처럼 아이를 다리 사이에 끼워 억지로 입을 벌리고 약을 짜 넣곤 했습니다. 거칠게 저항하는 작은 몸짓을 누르며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죄책감으로 짓눌렸습니다. 참으로 힘겹고 고단하며 끝이 보이지 않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살 더 먹어 네 살쯤 되니, 그렇게 온 가족을 괴롭히던 기침 증상이 거짓말처럼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약을 먹이고 세월을 견뎌내면서 전체적인 면역력이 올라간 덕분인지, 아니면 자라나는 과정의 한 고비를 잘 넘긴 덕분인지 그 이후로는 기침 소리가 싹 사라졌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어떤 고비나 계절의 경계선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기 따라 날씨가 정확하게 바뀌듯, 우리 아이의 자람과 면역에도 어떤 시점이 존재했던 모양입니다.

 

토해내면 다시 달래어 먹이던 피 말리던 전쟁, 그리고 세월의 무상함

아이에게 약을 먹이다 사래가 들려 다 토해내고 나면, 기진맥진해서 울다 지친 아이를 어르고 달래어 겨우 진정시킨 뒤에 다시 약을 먹여야 했습니다. 약을 먹이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으니, 속이 상하고 마음이 갈갈이 찢어져도 별수 없이 다시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이 피 말리는 전쟁이었고, 그때는 그 눈물겹고 힘겨운 시간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밤마다 아이의 이마를 짚으며 언제쯤 이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 까마득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리 사이에 끼워 안고 억지로 약을 짜 먹이던 그 자그마하던 아이가, 이제 다 커서 자기 짝을 찾아 결혼을 하겠다고 합니다. 세월이 정말 찰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득해집니다. 그렇게 사지 묶듯 잡아두고 약을 먹이던 때가 바로 엊그제 일처럼 눈에 선한데, 벌써 제 품을 떠나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꾸린다고 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아이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세월이 어쩜 이렇게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참 허무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10년 단위로 세월이 훌쩍 지나가며 인생의 풍경이 통째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어느새 이렇게 폭싹 늙었나' 싶은 마음에 쓸쓸해지기도 하고, 언젠가 저세상에 갈 날이 그만큼 가까워졌나 하는 서글픈 생각마저 스쳐 지나갔습니다.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이제는 온전히 제 길을 걸어가는 성인이 된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세월의 유수 같음을 실감합니다.

 

처서 바람 속에서 느껴지는 서글픔과 새로운 계절의 준비

오늘이 여름의 뜨거움이 물러간다는 처서라고 하는데, 절기라는 게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공기 자체가 후끈거리고 폭폭 쪄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출근하는 길에 맞은 바람은 제법 시원하고 서늘했습니다.

비록 직장에 도착해 해가 내리쬐고, 주차장에서 하루 종일 땡볕을 받아 뜨겁게 달궈진 차에 탈 때는 현실의 무게가 다시 밀려오기도 하겠지만, 아침에 살 끝을 스치던 그 바람만큼은 확실히 계절이 변했음을,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아침의 시원한 처서 바람을 맞으니 상쾌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아쉽고 서글픈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구나, 뜨거웠던 내 청춘과 열정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월 속으로 희미해져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결혼 소식과 계절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가슴 한구석을 깊게 흔드는 것 같습니다. 자식 다 키워 세상으로 보내는 대견함과 뿌듯함 뒤에 헛헛하게 찾아오는 쓸쓸함, 그리고 또 한 계절을 보내며 느껴지는 세월의 무상함이 아침 바람을 타고 가슴 깊이 파고듭니다. 이제는 지나간 그 뜨겁고 고단했던, 하지만 너무나도 찬란했던 전쟁 같은 시간들을 뒤로하고, 서서히 찾아오는 인생의 가을을 차분하고 단단하게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