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겁 많은 우리 집 푸들, 거실 카펫에 세계지도를 그리다
"아구, 이 놈의 시키..."
밤 10시, 기분 좋게 계모임을 마치고 들어온 집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불을 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세탁 불가능한 전기요 위에 펼쳐진 거대한 '세계지도'였습니다.
오랜만에 늦게 들어온 주인을 맞아 까망이가 준비한 11년 차 짬밥의 복수극이었죠. 순간 기가 막히고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상황을 마주한 까망이의 반응이 참 고스란히 녀석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젯밤을 뜨겁게 달군 '전기요 지도 사건'과 함께, 우리 집 푸들의 진짜 성격을 소개합니다.

예상치 못한 '세계지도' 사건, 그리고 눈치 백 단인 반응
가방도 못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대체 몇 시에 이런 대작을 그린 거고? 방에 있는 언니는 뭘 했길래 이걸 못 봤노?' 기가 막힐 뿐이었죠.
사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만 해도 까망이는 아주 뻔뻔했습니다. 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척, 평소처럼 꼬리콥터를 팽팽 돌리며 반갑게 절 맞아줬거든요.
하지만 제가 전기요와 강아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던진 순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까망아, 이게 대체 뭐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귀신같이 눈치채더니, 녀석은 슬그머니 소파 밑으로 몸을 반쯤 숨겨버리더군요. 아까의 꼬리콥터는 온데간데없고, 코끝만 쏙 뺀 채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제 눈치를 살폈습니다.
'이 사람... 지금 나한테 화내나', '엄마가 일찍 안 와놓고 내한테 와 이라노' 하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그 얼굴이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나려다가도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말투 톤 하나, 발소리 하나로 분위기를 다 파악해 버리는 눈치 100단 푸들. 어젯밤도 녀석의 영악하고 귀여운 눈치작전에 결국 제가 지고 말았습니다.
톤이 낮아지면 슬며시 얼굴을 돌리는,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
전기요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지켜보다 혼잣말이 새어 나왔습니다.
"이거 진짜 우짜지... 세탁도 안 되는데...버려야 하나 애구 방수 커버 씌울 걸 ㅠㅠ"
한숨 섞인 제 목소리에, 소파 밑에 숨어있던 까망이가 슬금슬금 기어 나와 제 앞에 조용히 앉더군요.
"너 이시키 이거 뭐야?"
제 목소리가 좀 가라앉았다 싶었는지, 녀석은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제 눈을 안 마주칩니다. 불편한 상황을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아주 지 엄마 머리꼭대기에 앉아 있습니다.
완벽하게 고개를 숙인 채로 눈알만 슬쩍 굴려 저를 곁눈질하는 그 섬세한 눈치라니!
야단을 친 것도 아닌데 조그만 톤의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하고 꼬리를 내리는 모습에, 화는커녕 미안한 마음까지 들어버렸습니다.
"그래, 니가 뭘 잘못했겠노 사람이 잘못했지"
결국 이번에도 내가 꼬리를 내립니다.
슬그머니 언니 방으로, 도망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물티슈를 가지고 돌아와 보니 까망이가 슬금슬금 일어나 아주 자연스럽게 언니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더군요.
'이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판단했는지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났습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코끝만 빼꼼 내놓고 제 동태를 살피는데, 방 안에서 언니의 웃음소리가 터졌습니다.
"까망아, 너 사고 치고 이리로 도망온 거야?"
녀석의 얄미우면서도 영리한 눈치작전에 결국 저도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전기요는 속 타는 제 마음도 모른 채, 물로 팍팍 빨아 베란다에 참하게 널려 있습니다. 세탁 불가 소재라 다시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하늘에 맡겨야겠지만요.
화가 나다가도 요 녀석의 행동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다 사랑스러운 추억이 됩니다. 11년 차 말썽꾸러기 까망아, 그래도 오늘은 꼭 안고 잘 거니까 내일은 전기요 말고 화장실에서 부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