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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란다의 서늘한 곳에 소쿠리에 담긴 양파를 보관하는 모습.


    "썩어서 구더기 생기고 초파리 바글바글 냄새 진동"

    시골에서 부모님이 땀 흘려 농사지어 보내주신 소중한 양파. 처음 박스를 풀어보았을 때는 자식 챙겨주려는 그 따뜻한 마음이 먼저 느껴져 참 감사했다. 잘 보관해서 오래오래 알뜰하게 먹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베란다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을 찾아 소쿠리에 나름 모셔두었다.
    하지만 잠깐 한눈판 사이에 베란다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남들은 인터넷에 나온 각종 보관 꿀팁으로 몇 달씩 멀쩡하게 잘만 먹는다는데, 어째서 내 베란다에서는 결국 이런 비참한 꼴이 나고 만 것일까.

    그림의 떡 같은 '스타킹 보관법'과 현실적인 한계

    인터넷이나 TV 살림 정보 프로그램, 유튜브 등을 보면 양파 보관 꿀팁이라고 나오는 정보가 정말 넘쳐난다. 겉껍질을 바짝 까서 신문지에 싸 보관하라는 말도 있고, 양파를 하나하나 못 쓰는 스타킹에 넣어서 마디마디 묶어 공중에 걸어두면 일 년 내내 썩지 않고 싱싱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나도 '이번엔 제대로 살림꾼처럼 따라 해 볼까?' 싶어 소쿠리에 든 양파들을 들춰보았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시작부터 한숨이 나왔다. 시골에서 받아온 양파들은 마트에서 파는 매끈하고 규격화된 양파와 달랐다. 콩알보다 조금 큰 미니 사이즈부터 주먹만 한 것까지 크기와 모양이 천차만별이었다. 이 자잘하고 동글동글한 녀석들을 언제 일일이 손으로 겉껍질을 까고, 스타킹에 하나씩 집어넣어 마디마디 묶어서 걸어두겠는가.

    거짓말 조금 보태면 진짜 메추리알만 한 애들까지 일일이 스타킹에 싸는 건 실생활에서 전혀 현실성이 없는 방법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양파 몇 알 보관하겠다고 그 정도의 정성과 시간을 쏟을 여유는 없었다. 남들에겐 최적의 보관법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시작하기 전부터 커다란 스트레스이자 넘기 힘든 벽이었다.

    악취와 구더기, 베란다를 습격한 비극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 남아있는 양파만 해도 대략 30개 정도 된다. 3월인지 4월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봄날 시골에서 가져왔을 때는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아 괜찮았다. 하지만 환기가 완벽하지 않은 아파트 베란다의 특성상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최근 들어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고 습도까지 높아지다 보니 양파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

    어느 순간 아래쪽에 눌려 있던 몇 개가 짓물러 무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완전히 썩어서 구더기까지 생기고 말았다. 그 주변으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초파리가 바글바글하게 꼬여 날아다니고, 베란다 문을 열 때마다 코를 찌르는 쾌쾌하고 퀴퀴한 악취가 진동을 했다.

    잠깐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을 못 쓴 사이 양파 두세 개가 완전히 폭싹 썩어 나자빠진 것이다. 양파는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에서부터 짓물러 썩어 들어가는 녀석들이라 한눈팔면 언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른다. 양파 30개 좀 잘 보관해 보려다가 베란다에서 꿈에 볼까 무서운 구더기 떼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벌인 긴급 처리 작전

    구더기와 초파리로 아수라장이 된 양파 소쿠리를 발견했을 때의 밀려오는 짜증과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 떠올려도 손끝이 찌릿하고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마음을 가다듬고 당장 분홍색 고무장갑부터 찾아 끼고 긴급 작업에 들어갔다.

    인상을 다 구겨 세상에서 잴 못생긴 얼굴로 숨을 참아가며 구더기가 들끓는 썩은 양파를 집어 올렸다. 끔찍한 악취가 집 안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그리고 벌레들이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비닐봉지를 몇 겹으로 겹쳐 꽁꽁 싸매서 단단히 묶어 버렸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땡볕 아래서 힘들게 농사지어 보내주신 소중한 양파인데, 맛있게 요리해 먹지도 못하고 이렇게 징그러운 몰골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걸 보니 속도 상하고 허탈한 마음이 컸다. 양파 보관 잘해보려다가 결국 고무장갑 끼고 썩은 벌레 치우는 신세가 된 내 자신이 참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완벽한 살림꾼을 포기하고 찾은 나만의 타협점

    이번 사태를 겪으며 결국 나는 '완벽한 살림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기로 했다. 스타킹에 싸고, 껍질을 일일이 벗겨 유난스럽고 깔끔하게 보관하는 것은 내 성향이나 체질에 전혀 맞지 않는다. 스트레스받아가며 남들의 보관법을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나만의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아주 명쾌하고 간단하다. "먹다가 썩으면 미련 없이 그냥 버린다!"

    대신 최소한의 양심과 부모님에 대한 성의로, 베란다 소쿠리에 있는 양파들의 위치를 자주자주 바꿔주는 '포지션 체인지' 전략을 쓰기로 했다. 통풍이 안 되어 밑에 눌려있는 녀석들을 위로 올려주고, 자리를 이리저리 돌려주는 정도의 수고만 들이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순리대로 살기로 마음먹었으니, 이렇게 가끔 굴려주다가 그래도 썩는 게 나오면 미련 없이 버리고, 남아있는 싱싱한 녀석들이나 부지런히 요리해서 챙겨 먹으련다.